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 (문단 편집) === 2018년 이전 === 1907년 세비야 지역 기술학교 학생들이 세운 '세비야 발롬피'가 기원이며, 1914년에 세비야 FC의 분파인 베티스 FC를 합병해 현재의 모습이 됐다. 통합 후 스페인 왕가로부터 작호를 부여받아 '레알 베티스 발롬피(Real Betis Balompié)'라는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됐다. 일찍부터 중산층의 지지를 받아 온 세비야와 달리, 세비야에서 떨어져 나온 노동자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발전을 거듭했다.[[http://sports.news.naver.com/wfootball/news/read.nhn?oid=431&aid=0000000299|관련기사]] 그로 인해 가난한 베티스 팬들인 베티코(Bético)들은 중산층 세비야 팬들인 세빌리스타(Sevillista)들로부터 온갖 멸시를 받아야 했다. 세빌리스타들이 베티스를 비하하며 부른 별명은 쓰레기라는 뜻의 '페티스(Fetiz)'였다. 이러한 역사와 전통 때문인지 베티스 팬들은 세비야를 극도로 증오한다. "Viva el Betis manque pierda(지더라도 베티스 만세)"는 베티코들의 대표적인 응원구호이다. 1950년 클럽의 상황이 극도로 악화되어 해체에 대한 이야기까지 돌던 와중에 생겨난 구호로써 팬들의 열정을 엿볼 수 있다. 1931년에 제2공화국이 출범하자 팀명에서 '레알'을 뺀 후 1934-35 시즌에는 리그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강세를 나타냈고, 1939년 스페인 내전 종전 후 원래 팀명으로 환원했다. 그러나 1946/47 시즌 뒤 한동안 세비야와 함께 3부 리그까지 떨어지며 하위리그를 전전했으나 1955년에 베니토 비야마린 회장이 취임하여 1958년에 팀을 다시 라리가로 재승격시켰고, 1961년에 에스타디오 엘리오폴리스란 이름을 버리고 자신의 이름을 딴 '에스타디오 베니토 비야마린'으로 했다. 1966년 비야마린 회장 사후 1~2부를 오가며 평범한 시절을 보내다 1991년에 고향 출신 마누엘 루이스 데 로페라 회장(라고 쓰고 독재자라고 읽는다.)이 부임하면서 라 리가의 신흥강호로 급부상했다. 어린 시절부터 베티스의 열렬한 팬이었던 로페라 회장은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여 팀을 명문으로 도약시키겠다는 포부를 드러냈고, 1993년에 전 RCD 마요르카 감독 로렌소 세라 페레르를 모셔온 후 팀을 재편해 1996/97 시즌에 3위를 기록했다. 1998년 여름에는 브라질 스타 데니우손 영입에 당시 역대 최고액 이적료였던 3000만 달러를 쏟아부어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다. 세라 페레르에 이어 [[루이스 아라고네스]], [[하비에르 클레멘테]], [[거스 히딩크]] 등 명장들도 이 팀을 거쳤다. 또한 소년 시절부터 베티스 팬이라는 이유로 세비야 팬들로부터 멸시를 받아야 했던 로페라 회장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라이벌 팀 세비야를 자극했다. 그로 인해 로페라 회장이 부임한 1990년대에 이르러 안달루시아 더비는 보다 폭력적이고, 보다 비상식적이고, 보다 비신사적인 '총칼 없는 전쟁'으로 발전하게 된다. 로페라는 데니우손 영입을 마무리 지은 뒤 "데니우손은 세비야의 모든 선수들을 합친 것보다 몸값이 비싼 선수" 라는 발언으로 시비를 걸었고, 심지어 1999-00 시즌 세비야의 강등이 확정된 직후에는 "Viva el Betis manque pierda"를 외치며 강등 축하쇼를 벌이기도 했다. 그 죄의 대가를 받은 것인지, 얼마 후 베티스도 동반 강등됐다. 그래도 주저앉으란 법은 없는지, 100년 역사상 최고의 천재 소리를 들은 [[호아킨(축구선수)|호아킨]]과, [[후아니토(1976)|후아니토]], 카피를 주축으로 리빌딩하기 시작해 2000/01 시즌에 2위로 재승격했다. 2001/02 시즌에는 6위를 기록해 선방했으나 2002/03 시즌에 데니우손 등의 줄부상으로 8위를 기록하는 등 중위권을 전전하다가, 세라 페레르 감독이 복귀한 2004/05 시즌에 리그 4위를 찍으며 코파델레이 컵에서 우승했는데, 우승 후에는 호아킨이 투우 세레머니를 선보이기도 했다. 2005/06 시즌에 챔피언스 리그도 진출해 황금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시즌이 끝난 뒤에 재정난이 생기자 호아킨을 팔아넘기면서 전력에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험악한 분위기는 베티스와 세비야가 2000년대 중반부터 나란히 신흥강호로 떠오르자, 안달루시아 더비를 스페인의 사회문제로 발전시키는 파국으로 이어졌다. 2002년 3월 23일 홈구장 더비매치 때 팀 팬들이 상대 세비야 팬들을 구타하는 바람에 스페인축구협회로부터 두달 간 홈경기 중지를 당했고, 2002년 10월 6일 에스타디오 라몬 산체스 피스후안 원정 때 티켓 구매 중이던 팬과 안전요원이 세비야 팬 수십 명에게 구타당하는 보복을 당했으며, 경기 도중 세비야 팬이 그라운드 위로 난입하여 팀 골키퍼 프라츠에 기습 공격을 가하는 바람에 스페인 축협은 세비야에 한달 간 홈경기 중지를 내렸다. 이에 따라 더비 매치가 진행될 때마다 경찰력 1천여명 배치 등 자구책을 마련했음에도 2007년 3월 1일(현지시간 기준), 코파 델 레이 8강전에서 세비야 감독이었던 후안데 라모스에게 물병을 던져 이를 보복했다. 유러피언 대회는 우승해보지 못한 베티스와 달리 2006년과 2007년에 2회 연속 유로파리그 전신인 UEFA컵 우승까지 차지했기에 세비야 서포터들은 더 약올리며 도발했기에 더더욱 앙금이 커졌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듯 보였던 두 팀이 갑작스레 화해하게 된 계기는 세비야 소속 선수 [[안토니오 푸에르타]]의 죽음이었다. 2007년 8월, 푸에르타가 경기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로페라는 세비야 측에 위로의 말을 전함으로써 오랜 앙금을 해소했다. 또한 베티스 팬들은 매 경기 푸에르타를 추모하는 응원을 펼쳤으며, 2007-08 시즌 안달루시아 더비에서는 베티스 팬들과 세비야 팬들이 함께 포옹하고, 선수들 모두가 푸에르타의 이름이 새겨진 셔츠를 입고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안달루시아 더비는 변함없이 치열한 라이벌 대결이지만, 푸에르타 죽음 이후 이전과 같은 폭력사태는 찾아보기 어려워진 상태다. 또한 안달루시아 더비는 '푸에르타 더비'라는 새로운 별칭을 얻게 됐으며, 평화로운 선의의 경쟁으로 발전해나가기 위한 두 팀의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호아킨을 잃은 팀은 점차 침체를 겪다가 2008-09시즌 18위로 강등당했으나, 2010~11 시즌 세군다리가(2부리그) 우승을 거두면서 다시 승격했다. 승격한 12~13시즌은 베냣 에체베리아-루벤 카스트로를 주축으로 하여 리그 7위를 거뒀는데 6위인 [[말라가 C.F.]]가 유러피언 클럽 대회 참가 자격 박탈을 당하면서 [[유로파리그]] 진출권을 따냈다. 유로파리그 48강 조예선에선 올랭피크 리옹,빅토리아,리예카와 같은 조를 이뤄 2승 3무 1패로 리옹 다음에 2위를 차지해 32강에 진출, [[루빈 카잔]]과 맞붙게 되었다. 1승 1무(1-1,2-0)로 16강에 진출, 세비야 FC와 맞붙어 둘 다 2-0으로 이기고 지며 1승 1패를 기록, 승부차기 끝에 3-4로 패해 탈락했다. 그리고 리그에서 또다시 강등위기에 처했는데 2014년 1월, 21라운드까지 겨우 2승(5무 14패)을 챙기며 20위로 추락해있다. 강등권 탈출을 위해서 4승 이상을 더 거둬야하는데 현 상황에선 참 어려운 듯 하다. 결국 4월들어서 5승 7무 22패로 여전히 20위 꼴찌이자 22점으로 강등권 탈출과 13점 이상이 벌어져서 가장 먼저 강등 확정됐다. 팀은 꼴찌로 강등당했지 유로파리그에서 예전보다 얌전해진 라이벌 관계라고 하지만 세비야에게 승부차기 끝에 졌지, 그리고 9위로 원래 대회 진출 자격이 없던 세비야가 말라가와 라요 바예카노의 재정문제로 대신 진출하더니만 유로파리그 우승까지 차지하고 다음 시즌 유로파리그 진출권도 얻은 걸 보면 베티스 서포터들은 서글퍼질 듯. 그나마 2014-15 시즌 2부 리그에서 37차전까지 1위를 달리며 1시즌만에 승격 가능성이 높아졌다. 아직 5경기가 남아있긴 하지만. 2경기를 남기고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우승을 확정지으며 라리가 승격을 확정지었다. 2015-2016 시즌을 맞이해 팀에 전격 복귀한 [[호아킨(축구선수)|호아킨]]과 그간 세군다 리가에서도 끝까지 의리를 지켰던 [[루벤 카스트로]], 두 노장의 힘과 함께 라 리가 복귀 첫 시즌을 치르고 있다. 함께 승격된 [[UD 라스 팔마스]]나 [[스포르팅 히혼]]과는 다르게 팀의 규모나 클래스가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당연히 현지에서도 첫 시즌의 목표는 라 리가 중위권 연착륙이다. 13라운드가 종료된 현재, 5승 3무 5패의 좋은 성적을 거두며 [[세비야 FC|세비야]]와 승점이 같은 11위 마크 중. 무난히 목표를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시즌 종료시 11승12무15패 승점45점 득실차-18점 최종10위로 승격 첫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2012년 스페인 청소년 대표팀 출신 수비수였던 [[미키 로케]]가 [[골반암]]으로 사망하는 비극을 경험하기도 했다. 2017-18 시즌 들어 키케 세티엔 감독의 전술과 선수들의 놀라운 활약으로 2018년 5월 1일 기준 최근 8경기에서 7승 1무를 거두는 놀라운 성적을 보이며 라리가 5위에 머무르고 있다. 선의의 라이벌 세비야가 8위까지 추락해있는것을 보면 대단한 일. 유로파리그 진출은 거의 확정되어 보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